2세 선교사가 더 나와야 한다

한인 이민교회들을 살펴 보면 대체적으로 선교 사역에 열심이다. 매년 교회 예산에서 큰 금액을 떼어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나 선교 단체를 지원하고, 선교사를 초청해 선교 보고를 듣고 선교 집회를 하기도 한다. 교회 내에 선교 중보기도 모임도 활발하고, 많은 성도들이 바쁜 와중에 준비하고 훈련하여 단기 선교팀을 조직해서 선교지를 방문, 봉사하고 현지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돕기도 한다. 담임 목회자들은 선교를 강조하는 설교를 많이 하고, 선교의 중요성, 아니, 선교가 교회의 존재 목적임을 일깨우기도 한다. 또한 경험있는 선교단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함께 동역하는 바람직한 실례도 많이 있다. 더 나아가 성도들을 훈련하고 세워 결국엔 선교사로 파송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렇게 선교에 많은 마음과 생각과 열정과 물질을 들여 많은 이민 교회들이 선교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나도 재미교포 1.5세 선교사로서 이민 교회들의 이러한 관심과 사랑, 기도와 물질의 지원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이민 교회 성도들이 우리 가족을 위해 눈물과 진심으로 중보 기도하고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아랍 무슬림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주님 앞에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이민교회 가운데 이러한 선교의 관심과 열정에 있어 제외되고 있는 대상이 있는데 바로 2세 자녀들이다. 여전히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이민교회에 다니는 영어권 2세들 중에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하고 파송 받아 장기 사역자로 섬기고 있는 이들은 극히 적다. 위에서 언급한 파송, 후원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파송 받아 나갔지만 이민교회에 연결이 되었거나 이민 교회에서 파송 했으나 장년이 되어 이민 온 한국어권 1세들이 대부분이다.

북미나 호주로 이민 간 1세대가 그들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본인들은 타국에서 이민자로서 힘든 삶을 개척해 나가겠지만, 아이들 만큼은 좋은 나라에서 좋은 미래를 향해 공부 잘 하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 생활을 하며 좋은 직장에서 좋은 생활을 보장 받고 사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리라. 한국이 어려워 여기 까지 왔지만 자녀들 만큼은 여기서 정착하고 성공적으로 이 나라에 Main Stream으로 진출하는 것이 1세대가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라면 당연히 가질 마음이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삶을 향한 태도가 자녀들을 색다른 형태의 과잉 보호를 낳고, 자녀가 "선교" 하겠다고 하면 부모가 힘을 다해 막게 한다. 한 예로 내가 속한 국제 선교 단체는 매년 초가을 유럽에서 새로 허입된 선교사들을 모아 집회와 합숙 훈련 기간을 갇는다. 한번은 재미 교포 2세 자매 한명이 여기 오게 되었다. 2주 동안의 훈련후 임지로 떠나게 되어 있다. 자매는 미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모임 장소까지 잘 왔다고 말하려고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딸에게 호소했다. 제발 지금 엄마에게로 돌아오라고. 결국 이 자매는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시 선교지로 떠났는지, 아니면 미국에 주저 앉았는지.

작년에 호주에서 20대 중반 젊은 교포 2세 사역자 부부가 우리가 있는 사역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시드니의 대표적인 한 대형 이민 교회에서 영어권 중고등부 전도사로, 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그들은 이전에 한번 우리 지역을 방문하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을 느끼게 되었고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려 이번엔 3개월 정도를 체류하려고 왔었다. 그런데 그 남편되는 형제가 참으로 난처함을 표현하며 내게 이렇게 하소연 했다.
"선교를 나가겠다고 하면 교회의 집사님, 장로님 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이 말리면서 이렇게 얘기 합니다. '여기 호주도 할 일이 많은데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호주에 영어권 2세 사역자가 이렇게 없는데 너마저 가면 어떡하느냐, 여기가 선교지인데 어딜 또 가려고 하는냐...' 이제는 조심스러워서 주변 분들께 얘기를 하기가 힘들어요. 교회 어른들을 존중하고 순종하려고 하지만 이 부분은 참 어려운데 선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난 그를 쳐다보며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했다.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하세요." 웃기게 들릴수도 있고 좀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형제가 통과해야 할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난 호주 이민 교회의 현실을 들어 알고 있다. 90년대 중반 한번 방문했을 당시 이제 막 영어권 고등학교 졸업자가 나오고 있었고, 어린이 주일 학교는 이미 호주에서 태어나거나 아주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서 온 아이들로 드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영어권 사역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나마 좀 젊어서 이민 와 영어를 잘 하는 1세, 1.5세 평신도들이 교사로서 그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때가 96년말이니 13년이 된 지금 그들이 다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들이 되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재 호주 이민 교회는 80-90년대의 미국 이민 교회 처럼 갈수록 2세 청소년, 청년들은 늘어가지만 2세 사역자는 거의 희귀종이 될 정도로 희박하다. 아이들은 너무 많아 지고 있는데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지도할 교역자들이 부족해 영어가 딸려도 어쩔수 없이 한국어권 1세들이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나마 어렵게 미국에서 2세 사역자를 데려오기도 하지만 재정적인 부담으로 대형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현실이고, 데려와도 계속 있는다는 법도 없다. (대체적으로 2세 사역자들의 단점이다.) 이 상황에서 모처럼 발굴한 2세 사역자는 그야말로 귀한 보배일 것이다. 그리고, 결코 머나먼 아랍이슬람권에 보내기엔 너무 아깝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일 뿐이다. 난 믿는다. 이민교회에서 2세 선교사가 나오는 것이야말로 이민교회에 있어 크나큰 축복이고, 미래의 2세 사역이 더욱 성장, 성숙하는 길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2세 사역자 부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아랍 무슬림권에 장기 선교사로 나가서 사역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이 호주의 한인이민교회를 가장 잘 섬길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감으로 자극과 도전을 받을 영어권 2세들이 눈에 선하다. 그들이 지금 양육하고 가르치고 있는 영어권 청소년들이 그들로 인해 선교에 동원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동참할 그 날이 고대 된다.

21세기의 안디옥을 꿈꾼다

안디옥 교회 내에는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중문화, 이중언어권 1.5세와 2세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같이 공존하는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예루살렘이 우려했던 신앙의 질과 깊이를 오히려 향상시킨 교회였다. 이것을 볼 때 우리도 더 이상 2세들을 향한 목회가 일방적으로 한국인 2세만을 위한 목회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안디옥 교회와 같이 한인 이민교회의 영어목회는 영어권 재미교포 2세들뿐 아니라 이제까지 우리가 이방인 취급했던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른 민족의 사람들 - 흑인, 백인, 히스페닉, 타동양계 - 까지 수용하고 품에 안아야 한다.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있었지만 예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리운 곳은 안디옥이었다. (행 11:26)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 처음 인식되고 불리운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고 안디옥이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안디옥 교회의 모델을 이민 목회에 적용할 때 세상이 우리 Korean American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가 안디옥 교회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가 과연 예수의 참된 제자들인지 의심할 것이고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에 우리 교회들이 끼치는 영향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LA인근의 한 한인 교회가 땅을 사서 이주할 때 지역사회 주민들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이 교회에서는 지역사회 발전에 재정지원과 관심을 가지고 이바지할 것을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신뢰하지 않으며 "한인교회들은 절대로 지역사회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는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한인 교회를 향한 지역사회의 불신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것은 우리 민족의 타민족을 향한 배타성과 자신들만을 위하는 이기심을 들수 있겠다. 이러한 배타성과 이기심은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으며 한 예로 2세 영어목회에서 조차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인 이민목회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둘 다 포함하는 목회여야 한다. 예루살렘만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요, 안디옥만 강조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예루살렘과 안디옥, 한국적인 1세 목회와 다문화, 다민족적인 2세 목회가 병행되어야 한다.

사실 미국 문화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 1세대로 하여금 "타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안디옥이 되시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가지 이민 1세대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바로 자신들이 예루살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디옥 없이 예루살렘 교회가 유럽 복음화를 이룰수 없었지만 역시 예루살렘 없이 안디옥이 존재할 수 없었다. 1세 교회는 바로 예루살렘의 역할인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안디옥의 리더쉽은 예루살렘 교회 출신들이고, 그들을 목양하고 가르친 초대 목사는 바로 예루살렘에서 파견받아 온 바나바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이민 1세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했듯이 그들 자신의 "안디옥"인 2세 교회를 위해 사람을 키우고 양성하며, 기도와 물질로, 적극적인 협력과 인력의 지원으로 2세 교회가 개척되고 성장하여 21세기 미국 사회와 문화의 나침반 역할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반면에 1세의 지원을 받아 개척되고 확장된 2세 교회는 안디옥 교회와 같은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 미국내의 타민족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접근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비젼을 가져야 한다. 사실 LA 지역 같은 경우를 보면 한국 문화의 사회적 영향력(Social Strength)이 크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한 1.5세, 2세들 조차도 한국 문화권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고, 친구들도 주로 한국인들로 사귄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민족적 그늘 너머의 다른 민족, 문화권의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나누고 교제해야 한다. 그리고, 2세 교회는 그들의 "예루살렘"인 1세 교회를 잊어선 안된다. 1세들과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존재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2세일지라도 1세들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 너무 많고, 그들 부모와의 밀접한 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LA인근의 (예: Irvine의 New Song Church) 아시아계 다민족교회들이 생겨나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에 다니는 한인2세들이 만약 교회에 잘 안 다니던 1세대 부모를 전도하여 교회에 초청하려 한다면 자신들이 다니는 영어권 다민족 교회에는 모시고 올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이러한 독립된 다문화 교회에서 은혜를 체험하고 신앙의 깊이가 더하여 주님의 참 제자가 되는 복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자신들의 부모세대를 전도하려고 할 때 자신들의 교회로 인도할 수 없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교회가 Gen-X와 Net Generation을 전도하는데 놀랍게 효과적인 반면에 1세 교회에서의 독립과 단절로 인해 1세, 2세 사이의 연결성을 이용한 복음제시의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유대 지방의 교회들이 기근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안디옥 교회는 이를 모른척 하지 않고 유대 교회들에게 구제 헌금을 보낸 것을 2세 교회는 기억해야 한다. (행 11:29) 안디옥과 같은 역할을 하려면 2세 교회는 그들의 예루살렘인 1세 교회의 번영과 발전,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역지원해야할뿐 아니라 1세 교회와의 관계와 연결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면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의 Launching Pad역할을 감당한 초대 교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과 바나바 등, 최초의 선교사들을 공식적으로 파송한 교회였고, 물질로 다른 지방의 어려운 교회들을 도운 구제와 섬김의 교회였다. 그리고, 안디옥은 타민족들을 품고 유대인, 헬라인 등의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꿈과 비젼을 가졌던 믿음과 말씀의 공동체, 분열과 싸움이 해결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치유와 회복, 화해(reconciliation)의 역사가 있었던 성령의 공동체, 지역사회를 복음화 시키고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한 불타는 열정이 있었던 전도와 선교의 공동체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역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이러한 21세기의 안디옥을 꿈꾸며 2천년전에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루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한인 이민 1.5세, 2세대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해 본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The Missionary Church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