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안디옥이 한인이민교회에 주는 교훈
이민 교회에서 사역해 본 목회자들은 경험해서 다 잘 알겠지만, 이민목회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사역현장이다. 어떻게 보면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선교의 최전방일지도 모른다.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한가닥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신약 교회이다. 이민교회의 1세와 2세간의 딜레마를 바라 볼 때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교회, 특히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관계는 이민교회의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먼저 예루살렘 교회를 살펴 보자 (행 2장-11장). 이 교회는 최초의 신약교회로서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루고 깊은 사랑의 교제와 나눔, 신앙의 실천이 있었으며, 경이로운 이적과 능력 행사가 당연시 여겨졌던 역동적인 교회였다. 이 교회는 또한 주로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들이 리더쉽을 가지고 있던, 아람어권 유대인들을 위한 교회였다. 소수의 헬라어권도 있었으나 문화와 언어, 종족에 있어 유대인권이 주류를 이룬 교회였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민 1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미주의 한인 이민교회들과 흡사하다.
반면에 사도행전 11:19-30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뒤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핍박이 심해지고 이 교회 모든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의 유대인 성도들이 안디옥까지 피신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열정에 붙잡혀 있던 그들은 그곳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는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몇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헬라말을 쓰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 수많은 무리가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구브로, 구레네 출신 성도들은 헬라의 문화와 언어에 능통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중언어, 이중문화에 익숙한 배경을 가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개척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 속에서 보면 이중문화권의 유대성도들이 누구이겠는가? 바로 우리의 1.5세, 2세들일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예루살렘과 안디옥교회, 그리고, 한인이민교회 사이의 공통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세워진 이 초대교회를 모델 삼아 한인이민교회의 방향과 목회관을 재조명해야 된다고 믿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 글의 요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한인이민교회는 예루살렘-안디옥을 반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민 1세대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흡사하다. 이민 1세대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문화적, 언어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영역 - 한국어, 한국문화 - 에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방인"으로 여겼던 인근의 타문화권, 타민족들을 마음을 품고 선교적인 목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거의 없어왔다. 예루살렘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 안디옥 교회가 필요했듯이 이민 1세 교회도 "안디옥 교회"가 필요하다. 이 안디옥 교회의 모델은 다문화 (Multicultural), 다민족 (Multiethnic)을 품는 지역교회의 모델이다. 저명한 신약학자 F. F. Bruce는 당시 안디옥 교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 때 유대인 회심자와 이방인 회심자들을 하나의 믿음 공동체 안에 화합시키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예수 안에서의 새로운 길은 가장 다양한 배경의 신자들도 충분히 함께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 안디옥은 유대인과 이방인, 문명인과 미개인들이 서로 어깨를 부비고, 지중해 문명이 시리아의 사막을 만나는 교차로였던 국제적인 도시였다. 유대 지방에서는 너무나 커보였던 인종적, 종교적인 격차도 이곳에서 만큼은 아무도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다."
Bruce 교수가 설명하는 안디옥의 상황은 바로 오늘날 LA를 비롯한 북미주의 대도시들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안디옥의 다원론, 다문화, 다민족의 상황이야말로 오늘날 미주의 이민교회들이 처해있는 현실인 것이다.